사람은 같은 종, 즉 생물학적으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에 속하지만, 화학물질에 대한 반응은 개인마다 매우 다르게 나타납니다. 똑같은 양의 물질을 동일한 조건에서 노출시켜도 어떤 사람은 심각한 부작용을 보이는 반면, 어떤 사람은 아무런 이상도 느끼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차이는 단순히 운이나 체력 문제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요인, 유전적 특성, 연령, 호르몬의 영향, 그리고 생리적 리듬 같은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1. 환경적 및 내분비계적 요인
사람이 처한 환경은 화학물질에 대한 반응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입니다. 특히 섭취하는 음식, 복용 중인 약물, 노출되는 공기와 수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독성 반응을 촉진하거나 억제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간에서 해독작용을 하는 주요 효소인 Cytochrome P-450(CYP450) 계열은 일부 식품이나 약물에 의해 활성이 증가하거나 억제됩니다. **자몽(grapefruit)**은 CYP3A4 효소를 억제하는 대표적인 식품으로, 특정 약물과 함께 복용하면 약물의 혈중 농도가 과도하게 높아질 수 있습니다. 이는 의약품의 부작용 위험을 증가시키고, 때로는 심각한 간독성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체내 호르몬 농도는 화학물질의 대사 경로에 영향을 줍니다. 여성과 남성은 에스트로겐, 테스토스테론, 프로게스테론 등 주요 성호르몬의 분포가 다르며, 이로 인해 같은 약물이나 독성물질에 대해서도 상반된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성은 에스트로겐 수치가 높은 특정 시기에 약물 대사가 느려져 독성 반응이 증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의 생체 리듬은 독성 민감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하루 중 일정한 시간대에 간 효소 활성도가 더 높거나 낮아지는 현상을 ‘활동일 주기(circadian rhythm)’라고 합니다. 아침과 밤, 낮과 새벽에 따라 약물의 흡수율, 대사속도, 배설 경로가 달라지며, 같은 용량의 약물도 복용 시간에 따라 효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2. 유전적 요인
사람마다 유전자는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화학물질에 노출되었을 때도 반응 양상은 매우 달라질 수 있습니다. 유전자는 단백질을 만들고, 단백질은 효소를 생성합니다. 이 효소들이 특정 화학물질을 대사하는데 관여하기 때문에, 효소의 유전자에 조금이라도 변이가 있다면 독성 반응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아세틸화 반응의 유전적 차이가 있습니다. **INH(이소니아지드)**는 결핵 치료에 쓰이는 대표적인 약물로, 간에서 acetyltransferase라는 효소에 의해 아세틸화되어 체외로 배설됩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이 효소의 활성은 다르며, 그 결과 빠른 아세틸화형, 중간 아세틸화형, 느린 아세틸화형으로 나뉘게 됩니다.
- 빠른 아세틸화형은 약물이 빠르게 대사되어 혈중 농도가 낮습니다.
- 중간형은 일정 수준의 대사를 유지합니다.
- 느린 아세틸화형은 약물이 체내에 오랫동안 잔류하여 부작용 발생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러한 아세틸화 능력은 인종 간에도 큰 차이를 보입니다. 백인과 흑인은 느린 아세틸화자가 많으며, 동아시아인(일본, 중국)은 중간 정도, 에스키모인은 빠른 아세틸화자가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신약 개발이나 약물 용량 조절, 독성 예측에 있어 매우 중요한 참고자료가 됩니다.
또한, 특정 유전자는 화학물질의 해독 경로를 전혀 가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알코올 탈수소효소(ADH)**나 **알데하이드 탈수소효소(ALDH)**에 유전적 결함이 있는 경우, 소량의 술에도 얼굴이 붉어지거나 심한 두통을 유발하는 등 알코올에 대한 과민 반응이 나타납니다. 이처럼 유전자는 독성 반응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3. 연령(나이)의 영향
연령 또한 사람의 독성 민감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입니다. 일반적으로 어린이와 노인은 독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 어린이는 간과 신장 기능이 아직 성숙하지 않아, 해독 효소의 발현이 낮고 배설 능력도 미흡합니다. 특히 신생아와 유아는 CYP450 계열 효소나 UDP-glucuronyl transferase 등의 효소가 충분히 발현되지 않아, 약물이나 독성물질을 적절히 대사하지 못하고 체내에 축적될 가능성이 큽니다.
- 노인은 나이가 들수록 간 혈류량이 감소하고 신장 기능이 저하되며, 대사 효소의 활성도 떨어지기 때문에, 같은 용량의 약물이라도 훨씬 오래 체내에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노인은 다수의 약물을 복용하는 경우가 많아 약물 간 상호작용으로 인한 예기치 않은 독성 반응이 나타날 위험도 증가합니다. 따라서 노인과 어린이는 약물 처방 시 반드시 용량 조절과 모니터링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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